지린성 - 경암동 철길마을 - 이성당 - 카페 라파르
일주일 전 갑자기 결정된 가족 여행. 장소도 몇박 며칠인지도 당일에서야 알게 된 나는 헐레벌떡 준비하고 차에 올라탔다. 여행을 가는 건 참 반길 일이고, 다른 사람들이 계획을 짜 준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즉흥 여행에 가까운 것을 떠난 것이라 이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올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이른 시간에 떠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군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거의 점심시간이 된 상태였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매운 짜장면을 도전하기 위해서 지린성에, 면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엄마와 매운 걸 못 드시는 아빠는 비빔밥을 드시러 가셨다. 우리를 먼저 지린성에 내려주고 가시기로 했는데, 지린성의 근처에만 가도 여기가 지린성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지린성이 위치한 쪽의 블럭에는 차도쪽에 인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사람들은 지린성의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초등학교 쪽으로 나 있는 길에 줄을 서 있었다. 하지만 내 예측으로 이는 주말이라 가능한 줄 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학생들이 등하교를 하는 평일에는 그쪽으로 줄을 서면 아이들이 줄 설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줄을 서기 위해 줄의 뒤쪽으로 걸어갔는데, 차에서 본 것보다도 줄이 훨씬 길어서 한참을 뒤로 가야 했다. 이 이후에 경암동 철길마을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다시 부모님과 만나야 했는데, 이 줄이 다 없어지길 기다렸다가 음식을 먹으면 부모님이 한참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 일단은 연락을 드려 많이 늦을 것 같으면 시내 버스를 타고 따로 이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집이라 그런지 대기줄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금방 가게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은 손님 탓에 빠른 회전율을 만들기 위해 미리 메뉴판을 나누어 주셨는데, 메뉴는 정말 간단했다. 고추짜장이냐 아니냐만 다른 것 같았다. 입장과 동시에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안내받았다. 내부는 최대한 많은 테이블을 놓기 위함인지, 먹는 장소를 제외한 인테리어나 장식품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매운 짜장면 두 개와 짜장밥을 주문하고 난 후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이미 메뉴가 나오고 있었다. 메뉴가 너무 빨리 준비되는 것 같아 놀라우면서도 그래서 아까의 회전율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의 종류가 단순한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보다 음식의 양이 많아서 놀랐다. 다 먹을 수 있을까? 내가 음식을 잘 먹는 편이기는 하지만 양이 많아 보여 조금 걱정스러웠다. 시험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동생은 고추 짜장면을 몇 입 먹더니 속 뒤집어 질 것 같다며 짜장밥을 열심히 먹었다. 주문할 때는 짜장밥 왜 시키냐고 제일 반대했지만 정작 제일 잘 먹더라.
짜장면은 소스와 면이 따로 나와서 부어서 비벼먹는 형태였다. 처음 딱 봤을 때는 그렇게 매워 보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맵더라. 나는 매운 걸 그래도 잘 먹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사진만 봐도 입에서 매운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원래 짜장면 먹을 때 면만 소스에 잔뜩 묻혀 먹는 편인데 양배추 집어먹고 새우랑 고기도 남김없이 집어먹었다. 면만 먹기에는 좀 맵더라. 처음 먹을 때는 괜찮은데 먹으면 먹을 수록 매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매운 걸 먹어도 속은 안 뒤집혀 지는 편이라서 단무지 열심히 먹으면서 먹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말로는 매운 오징어무침에 소면 비벼먹는 맛이라고 해서 언니한테 나중에 말해주니 언니도 공감하더라. 나는 매운 오징어무침에 소면을 비벼먹은 적이 없어서 무슨 맛인지는 잘 모르겠더라.
언니는 매운 걸 엄청 잘 먹는 편이라서 다 먹고는 기대했던 것 만큼 맵지는 않았다고 하더라. 나는 다 먹고 나니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정도였는데... 물론 아이스크림 먹으면 탈 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앞으로 매운 거 잘 먹는 다고 섣불리 도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부모님과 만나서 경암동 철길마을로 이동했따. 이동하는 중간에 입이 너무 매워서 과자도 집어먹고 물도 마셨다. 다행히 오래가지는 않더라.
철길마을에 딱 들어서자마자 보이던 것. 운세뽑기 기게. 부모님은 우리 전통 문화도 아닌데 갑자기 이게 왜 여기 있냐면서 한번 뽑아보고 싶다는 동생의 말을 현금없다는 반응으로 일축하며 지나쳤다. 나도 한번쯤 뽑아보고 싶기는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 모두 현금을 한푼도 들고 있지 않았어서 그냥 지나가기로.
그리고 철길에 딱 들어서는 순간 너무나 반가운 장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마치 어릴적 문방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모습. 초등학교 때 동전을 하나 두개씩 모아서 불량식품 먹으러 가던 그곳. 거기에서 자주 사 먹던 불량식품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부모님이 어릴적 먹던 것 부터 내 동생이 먹던 것까지. 엄마는 이런 걸 사 먹는 걸 여전히 탐탁치 않아 하셨지만 추억에 젖어 신나있는 우리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도 신이 나서 하나씩 고르라고 하셨으니 이때다 싶어 하나씩 집어 들었다. 솔직히 먹고 싶은 건 한 두개가 아니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최애인 뼈다귀 사탕을 집어들고, 동생은 쫀드기를, 아빠는 동부, 언니는 꾀돌이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엄마는 끝내 아무것도 집지 않으시더라.
내가 뼈다귀 사탕을 연호했더니 주인분이 다른 건 다 봉투에 담아주셨는데 뼈다귀 사탕만을 따로 빼서 내게 주시더라. 오랜만에 본 뼈다귀 사탕에 너무 신나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먹으면 혀가 파래졌던 사이다 맛 크림? 이랑 초등학교 운동회 단골 손님이었던 과일 사탕, 불어서 만드는 본드 풍선, 휘파람 사탕, 조금씩 아껴먹던 미니벨 등등... 진짜 추억 속 식품들이 즐비했다. 철길을 따라 걸으면 쭉 보니까 그런 가게들이 절반 정도, 나머지 절반 정도는 오징어 게임의 여파인지 달고나 가게가 많았다. 달고나는 어릴적에 많이 만들어봐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빠는 가족끼리 교복 맞춰 입고 사진 찍고 싶으신 것 같았는데, 이 곳은 장소가 협소해서 사진을 찍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언니가 나중에 세트장 같은 데 가서 다 같이 찍자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사진을 찍기에는 지나치게 정신이 없더라.
지나가다가 본 가게. 이 하나만 깨끗하게 지어진 건물에 들어가 있어서 굉장히 눈에 띄었다. 양초 공예 체험과 향초 등을 파는 기념품점인 것 같았는데, 우리는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만 해도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았고, 집에 쓰지도 않은 양초들이 장식장에 한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철길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이런 장식이 있었다. 당시에 사용되던 걸 그대로 남겨놓은 건지 아니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설치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철길마을 다운 장식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시더라.
우리가 왔던 곳과 반대로 향해보기로 했다. 아까보다 수가 많은 가게들과 화려한 철길이 보였다. 아마도 우리는 중간부터 철길에 들어섰던 게 아닐까 싶었다.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고 있는 철길마을.
사람이 조금 줄어든 틈을 타서 철길을 찍어보았다. 교복 대여점도 곳곳에 위치하고 있고 오락실도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오락실에 가 본적이 없어서 궁금해서 조금 기웃대다가 자리를 떴다.
길 가다가 갑자기 철길이 화려해졌다. 사진관도 있고 아마 이곳이 제일 초입 부분이었던 게 아닐까 싶어지는 곳이었다. 무지개색 철길을 어릴적 횡단보도 걷듯이 건너다니며 길을 쭉 따라갔다.
그리고 이쪽 끝자락에는 열차 모형이 있더라. 그 때 그 시절의 열차를 본 따 만든 거겠지? 실물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관리하는 것에 모형과 실물은 큰 차이가 있을 테니,
철길마을을 뒤로 하고 저녁 겸 먹을 빵을 사러 이성당으로. 나는 빵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굉장히 두근두근했다. 어떤 빵들이 나를 기다릴까? 비록 유명하다는 빵들이 내가 안 좋아하는 단팥빵과 야채빵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빵도 맛을 것이라 기대하고 입장!
야채빵과 단팥빵을 사기 위해서는 입장 줄이 아예 별도로 있었다. 인기 상품이기는 한 듯, 아예 해당 빵만을 담아주는 전담 직원이 있고 아예 판에다가 쌓아놓고 원하는 수량만큼 덜어주더라. 단팥빵과 야채빵을 구매하고 본격적으로 빵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치즈고로케를 골랐다. 다른 빵이 궁금한 것도 있었는데, 고로케도 유명하다고 해서 고로케 중에서 제일 접하기 힘들어 보이는 걸로. 물론 특이하게도 네모난 형태라는 것도 눈을 끌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서 슈톨렌도 팔았는데, 틴케이스가 너무 예뻐서 그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고로케를 골랐다. 갑자기 2만원짜리 슈톨렌을 집어서 가면 엄마가 놀랄 것 같기도 했고, 먹을 사람도 없고.
이성당을 나와서 다음으로 어디를 갈지 한참을 토론한 끝에 선유도를 가기로 했다. 선유도 카페에 가서 음료를 마시자. 바다 경치도 즐길 겸 하고 결정한 것이었는데, 선유도에 도착하니 날씨가 어째 더 꾸리꾸리해져 있더라. 덕분에 기대했던 청량한 바다뷰를 볼 수는 없었다.
등대라는 뜻에 걸맞게 카페는 위로 긴 형태였는데, 덕분에 한 층 한층에는 앉을 공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운이 좋게도 다인석이 비어 있어 거기에 앉아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바깥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날씨가 좋은 편이 아니라 조금 추울 것 같았다. 얼마 앉아 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금방 져 버리더라.
이대로 집에 가기는 너무나 아쉬워서 들어오는 길에 봤던 수산 시장에 들려 회를 사 가기로 했다. 요즘 방어?가 철이라는 것 같던데, 회를 먹는 건 좋아하지만 회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나한테는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었다.
중간에 발견한 수조를 탈출하려는 랍스타. 괜히 랍스타를 응원하게 되더라. 탈출했을까? 결과는 모르겠다. 랍스타의 노력을 보고 있자니 당분간 랍스타 먹을 생각은 안 들 것 같더라.
그리고 우리는 처음 계획과 다르게 돔을 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니랑 아빠가 돔을 골랐으니 그게 더 나은 것이었던 게 아닐까? 상인 분이 수조 끄트머리를 밟고 올라가 돔을 건져올리시는 데 그 몸부림에 수조의 물이 사방으로 퍼져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던 나한테도 물이 튈 것만 같았다. 상인분이 떨어지지 않을 지 걱정되었는데 잘 건져내시더라. 아래 쪽 수조로 한 번 옮긴 다음에 다시 건져내셨는데, 그 때도 물이 상당히 많이 튀어서 깜짝놀랐다. 한번도 생선을 꺼내는 걸 목격한 적이 없어서 엄청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손질이 끝난 회가 우리 손에 들어왔다. 회 가격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잘 가늠이 안 되었는데, 언니랑 아빠는 가격과 생선 크기에 비해 회 양이 적은 것 같다고 하셨다. 어차피 회 썰면 생선은 죽은 거고 상하기 시작하는 거나 다름 없는데, 회 빼돌려서 어디다가 쓰냐고 아빠한테 물으니 모둠회를 만드는데 쓴다고 하더라. 생활의 지혜가 하나 늘어난 기분이다.
집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치즈 고로케를 먹어봤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까 카페 가기 전에 못 먹어가지고 다 식었더라. 이건 좀 많이 아쉬웠다. 따뜻할 때 먹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는데, 치즈 고로케라 그런지 약간 피자 고로케 같은 맛이 났다. 무난하게 맛있는 맛. 동생이 옆에서 어디서 피자빵 냄새가 난다고 했다. 단팥빵은 한입만 얻어먹었는데, 달달하고 팥이 엄청 많이 들어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단팥빵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정말 맛있다던가, 어디와 뭐가 다르다던가 이런 평을 내리기는 어려운 것 같다.
드디어 집에 도착해서 회 시식 시작! 돔은 꽤나 맛있었고, 내 입에도 잘 맞았다. 비리지도 않고 부드러웠다. 소주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돔이랑 같이 먹으니까 잘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회를 맛있게 먹고 아까 철길마을에서 샀던 쫀드기에 동부를 곁들어서 술을 마셨다. 동부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것 같은데, 어딘가에서 많이 먹어본 것 같은 맛이었다. 별로 신용이 안 가는 외관과 다르게 꽤나 맛있어서 계속 손이 가더라. 왠지 다음에 어딘가에서 보게 되면 한 봉지 집어 올 것만 같았다.